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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

주보 [고난절 금요예배] 2020-04-10

admin 2020.04.10 15:31 조회 수 : 1093

고난절 금요예배 KARFREITAGSGOTTESDIENST 202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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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절 금요예배 KARFREITAGSGOTTESDIENST
2020년 4월 10일 | 19:30

집례 윤민수 목사

묵도 Anbetung

다같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찬송 Lied

149장(통 147장)

다같이

교독 Wechsellesung

131. 고난주간 (2)

다같이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신앙고백 Glaubensbekenntnis

다같이

기도 Gebet

집례자

설교 Predigt

막 15:16-32

윤민수 목사

찬송 Lied

150장(통 135장)

다같이

축도 Segen

설교자

교회소식 Bekanntmachung

1. 오는 주일은 부활절 예배로 드립니다. 부활절 감사헌금은 본 교회 후원 선교지 지원을 위
해 사용됩니다.
2. 매일성경 5,6월호가 도착했습니다. 윤민수 목사에게 신청하시면 우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조롱받는 왕 마가복음 15:16-32

로마 총독 빌라도가 성난 군중들을 만족시키고자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
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었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브라이도리온이라는 총독 궁 안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온 군대를 모았습니다(약 400-600여 명). 그들은 ‘유대인의 왕’을 희롱
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황제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황제에게 하듯 “유대인의 왕께 충성!”이라
고 경례하며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또한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고 꿇어 절하
며 조롱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희롱한 다음에 자색옷을 벗기고 다시 그의 옷을 입히고 십
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이것은 조롱과 모욕의 시작이었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을 끌고 처형 장소인 골고다[해골의
곳]로 향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지실 십자가[의 가로대]를 지고(참조. 요 19:17) 끌려 가십
니다. 구레네 출신 시몬은 성읍 밖으로 나왔다가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예수님에게 형(形)을
집행하던 군인들과 마주쳤습니다. 그는 군인들에게 붙들려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습니
다. 영문도 모른채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억지로 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두 아들 알렉산더
와 루포의 이름이 초대교회의 기록에 남았습니다. 모욕감을 느끼며 억지로 졌던 예수님의 십
자가가 훗날 그의 집안의 자랑이 되었습니다(롬 16:13). 십자가형의 고통을 덜어줄 목적으로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그 어떤 수치와 모욕 뿐만 아
니라 고통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막 10:38; 14:36).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물로서 자
신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시기 위해서 그 모든 수치와 고통을 십자가에서 받으셨습니다(사
53:3-4).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눠 가졌습니다. 이것은
“[원수들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기록한 시편 22편 18절의 성취입니
다. 예수님께서 제 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 위에 있는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썼습니다.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는 강도 둘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지나가던 사람
들이 이 광경을 보고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
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이 말을 듣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함께
희롱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자들도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욕 속에 예수가 자신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
신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조롱하듯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불렀던 예수님은 참으로 만왕의 왕이며 온 인류의 구주 메시아[그리스
도]이십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방 속에서 예수님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헐고 사람
의 손으로 짓지 않은 새 성전을 세우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구경꾼들은
예수님을 성전 모독자요 파괴자라고 모독[신성모독에 사용되는 단어]했지만,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모독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신성모독’이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설명하면서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병사들과 다양한 구경꾼들
과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진 강도들로부터 받는 조롱의 말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
니다. 마가의 청중들은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고서도 십자가에 못박힘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
히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희롱당하십니다. 그런데 이 희롱
이 오히려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조롱과 멸시 속
에서 구약성경에 예언 되었던 메시아의 사역을 이루십니다. 성경을 따라 신실한 하나님의 종
이 당하는 조롱과 비방과 고통을 예수께서 고스란히 감내하십니다(시 22:18, 7, 1; 사 53:3-
4). 조롱과 멸시 속에 역설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더욱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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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뜻을 따라 ‘고난 받는 종,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
시는 사명을 이루고 계십니다(막 10:45). 그런데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들이 기
대했던 강력한 백마 탄 군왕이 아닌 ‘조롱받는 왕’으로 드러나는 순간 실망과 두려움과 당황 속
에서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과 구경꾼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심지어 함께 못 박힌 좌우편의 강
도들로부터 모욕과 조롱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
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
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고 기록하는 이사야 53장 8
절의 말씀처럼 그 모든 멸시와 조롱을 잠잠히 묵묵히 받으십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오신 목적과 그가 이루신 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교회
와 신자의 신앙과 사명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해와 동의와 칭찬을 바라고 의
와 참된 거룩함과 사랑과 용서와 긍휼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며 말씀
에 순종하여 사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고도 비방을
받는 것을 서운해 하거나 억울해 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선을 행함으로 비방을 받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라” 말합니다(벧전 3:17). 혹여나 교회와 신자가 악을 행하므로 고난을 받
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닮아 그가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오해 했던 제자들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
의 영광을 얻고 높아지고 부요해지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세상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고 세상의 자랑으로 자기의 자랑을 삼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예
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가시지만, 그 길 위
에서 누가 큰 자인가로 싸우고 주께서 영광을 얻으실 때 누가 우편과 좌편에 앉을 것인가로 싸
우던 제자들처럼 이 시대의 교회가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교회가 교회의 길을 바르게 가더라도 비방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세
상으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을 때 어떠한 모습을 보여야 할까요? 자신의 정당함을 변호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반박해야 할까요? 교회가 가진 모든 힘과 수단을 동원하여 조롱하고 멸시
한 이들과 맞서야 할까요? 우리는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성
경도 알지 못하고 구원도 알지 못하는 무지하고 부정한 자들이 감히 어떻게 거룩한 교회를 모
독하는가?”라고 생각하고 쉽게 분노합니다. 교회를 핍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큰 목
소리로 더 큰 힘으로 되갚으려고 합니다. 높아진 교회 많은 것을 누려오던 교회였기에 이러한
도전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동안 교회가 사회적으로 누리던 기득권과
특권이 있었다면 모두 내려놓고 힘없고 가난한 이웃들의 편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기적이고 위선적이고 세속적인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
은 교회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신자에게 예수님과 같은 모습을 보고 싶기 때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즉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그
의 아들을 통해 대속하시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신 그 사랑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교회와
신자에게서 발견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묵상함으로 수치와 조롱을 감내하시기까
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순종하셨던 주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왕이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리고 우리
를 사랑하심으로 기꺼이 조롱받는 왕이 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이러한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우리도 기꺼이 그 길을
걸어가야하겠습니다. 사랑과 순종으로…

20-수난일

2020.04.10.

Ich glaube; hilf meinem Unglauben!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KARFREITAGSGOTTESDIENST 

부퍼탈 한인선교교회

Evangelische koreanische Missionsgemeinde 

Hellerstr. 12 42103 Wupper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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